수능 끝나고 이 지문 해설 강의를 봤을 것이다. 다 명강이다. 듣고 나면 칸트가 이해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질문 하나 하자. 다음 철학 지문에서, 강사가 옆에 있나?
없다. 시험장에서 너는 혼자다. 그리고 다음 지문의 주인공은 칸트가 아니다. 흄일 수도, 비트겐슈타인일 수도, 네가 이름도 못 들어본 학자일 수도 있다. 이해는 그 지문에 두고 나오는 것이다. 시험장까지 가져갈 수 있는 건 몸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은 해설 강의가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칸트를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신 칸트를 몰라도 이 네 문항이 풀리는 동작을 보여준다. 이름 셋이 나오는 지문은 주장 목록이 아니라 화살표 지도다. 누가 누구에게 동의하고, 무엇이 무엇에 의존하는가. 그 화살표만 그리면 네 문항이 전부 같은 지점에서 풀린다.
하나 더. 이 지문에서 철학자들이 서로를 무너뜨린 무기와, 출제자가 오답을 만든 무기가 같다. 둘 다 화살표 뒤집기다. 끝까지 읽으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출처: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14~17번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홀수형). 교육 목적의 인용.
정답: 14-⑤ / 15-① / 16-② / 17-③
아래 화살표·표는 나중에 도식으로 넣을 자리이지, 수업 사진이 아니다. featured_media: 0. 이미지를 지어 넣지 않는다.
1. 원문과 문항
[14~1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철학에서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인격’, 그중 ‘나’를 ‘자아’라고 한다. 인격의 동일성은 모든 생각의 기반이다. 우리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동일한 인격이기에 과거에 내가 한 약속을 현재의 내가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주관’은 인식의 주체를 가리키며, ‘인식’은 ‘앎’을 말한다.
그러나 칸트는 ‘나는 생각한다.’, 즉 ‘자기의식’은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한 조건 자체는 무언가가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주관으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고, ‘영혼이 실재할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A] 이를 바탕으로 칸트는 영혼이 인격이라는 견해를 반박한다. 칸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동일성을 의식하는 것은 인격이다.’와 ‘영혼이 자기의식을 한다.’라는 두 전제 모두 납득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전제들로부터 ‘영혼이 인격이다.’라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 전제에 등장하는 ‘의식’은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해 의식한다는 뜻이지만, ‘생각하는 나는 생각한다.’와 다름없는 두 번째 전제에 등장하는 ‘의식’은 무언가가 꼭 실재함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칸트는 통시적으로 동일한 인격의 존재를 직접 증명하는 대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주치는 복수의 주관이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된다.’라는 가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래야 경험적 판단, 윤리적 판단 등의 생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데, 이러한 구성은 통시적으로 동일한 인격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스트로슨은 자아를 인식하는 방식이 경험적 인식의 방식과 구별된다는 칸트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복수의 주관이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철학적 상상에 불과하다고 칸트를 비판한다. 인격의 문제에서 신체를 간과한 칸트와 달리, 스트로슨은 인격을 의식과 신체의 복합체로 본다. 스트로슨에 따르면, 시공간적 세계 안에서 우리의 신체를 매개로 대상이 경험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며 자아에 대한 인식은 경험적 인식들로부터 추상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공간적 세계에서의 경험이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을 뒷받침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기의식도 마찬가지로 경험에 의존하기에, 자기의식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는 칸트의 견해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롱게네스는 통시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없이는 경험적 인식이 성립할 수조차 없으므로, 자아에 대한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추상화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그는 자아와 인격이 시공간적 세계를 경험하는 인간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롱게네스는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며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율성을 지닌 존재라는 칸트의 견해를 인정한다. 그러나 자율성을 지닌다는 것은 시공간적 세계를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것들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려면 신체가 있고 살아 있어야 하므로, 인격의 동일성의 기준은 각자가 자신의 것이라고 통시적으로 인식하는 신체라고 롱게네스는 주장한다.
14. 윗글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은?
① 칸트에 따르면 자기의식은 영혼의 실재를 보장한다.
② 칸트에 따르면 생각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과 독립적이다.
③ 스트로슨에 따르면 자기의식은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④ 스트로슨에 따르면 의식을 매개로 대상이 경험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⑤ 롱게네스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은 시공간적 세계 안에서의 선택에 필수적이다.
15. [A]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두 전제’를 연결하는 개념의 함의는 실재성과 관련하여 어떤 점에서 서로 다를까?
② ‘복수의 주관이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된다.’라는 가정은 어떤 점에서 반박되고 있을까?
③ ‘영혼이 실재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는 견해인 근거는 무엇일까?
④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이 ‘직접 증명’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여야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⑤ ‘영혼이 자기의식을 한다.’라는 전제가 ‘생각하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전제와 다름없는 근거는 무엇일까?
16. 다음은 윗글을 읽고 학생이 작성한 학습 활동지이다. 윗글을 바탕으로 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아래의 핵심 개념에 대해 윗글에 제시된 학자들이 보일 수 있는 입장을 작성해 봅시다.
[핵심 개념 1] 자아에 대한 인식과 경험적 인식
- 칸트: 자아를 인식하는 방식과 시공간적 세계의 대상들을 경험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은 다르다고 본다. …… ①
- 스트로슨: 시공간적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적 인식은 자아에 대한 인식에 의존한다고 본다. …… ②
[핵심 개념 2] 추상화 과정
- 스트로슨: 경험으로부터의 추상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나’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 롱게네스: 경험으로부터의 추상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나’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 ③
[핵심 개념 3] 통시적 인격과 도덕적 존재
- 칸트, 롱게네스: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율성을 지닌다는 것을 수용한다. …… ④
- 칸트, 스트로슨, 롱게네스: ‘시간의 흐름 속 동일한 인격으로서의 나’라는 개념을 수용한다. …… ⑤
17.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보기\>
갑: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야.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신체 전체의 기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지. 즉,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인격일 수 없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살아 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
을: 그렇지 않아.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본래의 자신과 동일한 인격이야. 비록 프로그램은 신체가 없지만 우리 두뇌와 프로그램이 수행하는 사고 기능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거든. 인격의 동일성은 어떤 가정도 두지 않고 이러한 사고 기능의 동일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해.
① 롱게네스의 견해에 의하면,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만으로 인격이 될 수 있다는 갑의 입장은 옳겠군.
② 스트로슨의 견해에 의하면, 신체를 지니지 않은 존재에게 인격이 귀속될 수 없다는 을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④ 칸트의 견해에 의하면,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은 그것에 대한 가정이 선행될 필요 없이 사고 기능의 동일성을 통해 판단된다는 을의 입장은 옳겠군.
⑤ 롱게네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과 상이한 존재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수행될 수 있는 사고 기능이 인격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을의 입장은 옳겠군.
2. 용어 — 이 지문에서만의 뜻
칸트 사전을 열지 마라. 이 지문이 단어를 어떻게 쓰는지가 전부다.
| 표현 | 뜻 | 이 지문에서의 역할 |
|---|---|---|
| 인격 |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인간 | 동일성의 대상. 네 문항이 모두 여기를 가리킨다. |
| 자아 | 그중 ‘나’ | 인식의 중심. 스트로슨·롱게네스가 화살표를 뒤집는 자리. |
| 주관 | 인식의 주체 | 칸트 이전에는 단수, 칸트 가정에서는 복수. |
| 인식 | 앎 | ‘조건’과 ‘실재’를 가르는 칼. |
| 자기의식 | ‘나는 생각한다.’ | 칸트에게는 인식의 조건. 영혼의 실재를 보장하지 않는다. |
| 영혼 | ‘생각하는 나’ | 칸트 이전 견해의 기둥. 칸트가 실재 보장을 자른 대상. |
| 통시적 동일성 | 시간의 흐름 속 같은 인격 | 생각(경험·윤리 판단)이 서려면 필요한 것. |
| 신체 | 시공간적 세계의 몸 | 스트로슨은 복합체의 한쪽, 롱게네스는 동일성의 기준. |
| 추상화 | 경험적 인식들에서 ‘나’를 뽑아냄 | 스트로슨의 화살표. 롱게네스는 이 방향을 거부한다. |
| 가정 | 복수 주관 ⇒ 동일 인격으로 인식된다 | 칸트가 직접 증명 대신 앞에 두는 것. 스트로슨이 ‘상상’이라 자르는 것. |
여섯 줄 문단 지도
한 문단에 한 줄. 그 이상 쓰지 않는다.
- 칸트 이전: 영혼(생각하는 나)이 단일한 주관으로 시간 속에 지속한다 → 그게 인격 동일성이다.
- 칸트: 자기의식은 인식의 조건일 뿐, 영혼의 실재를 보장하지 않는다. 가능성만 연다.
- [A] 칸트: 두 전제의 ‘의식’ 뜻이 달라서 영혼 = 인격이 안 나온다.
- 칸트: 복수 주관이 동일 인격으로 인식된다는 가정을 먼저 둔다. 생각이 시간을 따라 구성되려면 그 가정이 필요하다.
- 스트로슨: 그 가정은 상상이다. 인격 = 의식 + 신체. 경험 → 자아 인식. 자기의식도 경험에 의존한다. 칸트 화살표를 뒤집는다.
- 롱게네스: 동일 자아 없이 경험적 인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경험 → 자아를 다시 뒤집음). 그러나 기준은 통시적으로 내 것이라고 인식하는 신체다. 살아 있어야 선택한다.
3. 화살표 지도
철학자가 칸트를 치는 무기와 출제자가 선지를 치는 무기는 같다. 화살표를 뒤집는 것이다.
나중에 넣을 도식이다. 수업 사진이 아니다.
칸트 이전
영혼(생각하는 나, 단일 주관) ──지속──► 인격 동일성
칸트
자기의식 ──조건──► 인식 가능
자기의식 ──×──► 영혼의 실재 ← 정거장 2: 의식 다리를 자름
가정(복수 주관 ⇒ 동일 인격) ──선행──► 생각(경험·윤리 판단)
스트로슨 ← 정거장 1의 한쪽
경험 ──추상화──► 자아 인식 (칸트 화살표를 뒤집음)
자기의식 ──의존──► 경험
인격 = 의식 + 신체
매개는 신체이지, 의식이 아니다
롱게네스 ← 정거장 1의 다른쪽
동일 자아 ──없으면 성립 불가──► 경험적 인식
(스트로슨의 경험 → 자아를 다시 뒤집음)
살아 있는 신체(통시적으로 내 것) ──기준──► 인격 동일성
인간에게만. 사고 기능 복제로는 안 된다
정거장 1 — 스트로슨과 롱게네스의 화살표
둘 다 신체를 말한다. 그래서 묶으면 죽는다.
스트로슨의 화살표는 경험에서 자아로 간다. 자아 인식은 경험적 인식들에서 추상화된다. 자기의식도 경험에 의존한다. 그래서 자기의식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는 칸트는, 스트로슨에게 잘못이다.
롱게네스의 화살표는 반대다. 통시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없으면 경험적 인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자아 인식은 경험에서 뽑아낸 것이 아니다. 신체는 ‘경험의 재료’가 아니라, 살아 있으면서 선택하는 인간의 동일성 기준이다.
같은 ‘신체’라도 화살표 방향이 다르면 다른 학자다. 16번이 여기를 잰다.
정거장 2 — 칸트가 의식 다리를 자른다
[A]의 두 전제는 둘 다 ‘의식’을 쓴다. 같은 단어다. 그래서 다리를 놓고 싶어진다.
칸트는 그 다리를 자른다.
- 전제 1의 의식: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해 의식한다. 실재 쪽이 붙어 있다.
- 전제 2의 의식: ‘생각하는 나는 생각한다.’ 무언가가 꼭 실재함을 뜻하지 않는다.
다리가 잘리면 ‘영혼이 인격이다’가 안 나온다. 15번은 이 절단을 묻는 질문을 고르는 문항이다. ‘의식’을 같은 뜻으로 이은 선지는 전부 버린다.
4. 문항이 재는 것
| 문항 | 겉유형 | 실제로 재는 것 | 정답 |
|---|---|---|---|
| 14 | 내용 일치 | 지문 화살표가 선지 안에서 살아 있는가. 단어만 같은가는 안 잰다. | ⑤ |
| 15 | [A]에서 답하는 질문 | 두 ‘의식’의 함의가 실재성에서 갈라지는가. [A] 밖 문단을 끌어오면 틀린다. | ① |
| 16 | 학습지 — 적절하지 않은 것 | 스트로슨 화살표가 뒤집혀 적혔는가. | ② |
| 17 | 보기 적용 [3점] | 3층: 보기 화살표 / 선지가 붙인 학자 / 선지가 갑·을에게 씌운 말. | ③ |
5. 풀이 — 동작이 먼저다
칸트를 설명하고 답을 말하는 순서가 아니다. 동작을 하고, 그다음에 선지를 확인한다.
14 — 동작: 선지를 화살표로 바꿔 지문 화살표와 겹친다
겹치면 살리고, 방향이 바뀌거나 매개가 바뀌면 죽인다.
| 선지 | 선지 화살표 | 지문 화살표 | 판정 |
|---|---|---|---|
| ① | 칸트: 자기의식 → 영혼 실재 보장 | 자기의식 →×→ 영혼 실재. 가능성만 연다 | 죽음 |
| ② | 칸트: 생각의 구성 ⊥ 시간의 흐름 | 생각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 | 죽음 |
| ③ | 스트로슨: 자기의식 → 인식의 조건 | 그 화살표는 칸트다. 스트로슨은 잘못이라 한다 | 죽음 |
| ④ | 스트로슨: 의식 매개로 대상 경험 = 과학적 사실 | 매개는 신체다. 의식이 아니다 | 죽음 |
| ⑤ | 롱게네스: 살아 있음 → 시공간 세계 안 선택에 필수 | 살아 있어야 경험하는 것들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한다 | 살음 |
정답 ⑤. ④가 아깝다. ‘과학적 사실’이라는 지문 단어를 보고 손이 나간다. 매개가 바뀌면 화살표가 다른 것이다.
15 — 동작: [A]만 연다. 그 단락이 실제로 답하는 질문을 고른다
[A]가 하는 일: 두 전제는 납득한다. 그러나 연결 개념인 ‘의식’의 함의가 실재성에서 다르다. 그래서 영혼 = 인격이 안 나온다.
| 선지 | 그 질문이 답이 나오는 곳 | 판정 |
|---|---|---|
| ① | [A] 마지막 두 문장. 두 의식의 실재성 함의 | 살음 |
| ② | 스트로슨 문단. 가정 = 철학적 상상 | [A] 밖 |
| ③ | 2문단. 가능성은 연다. ‘납득할 수 없는 견해’가 아니다 | [A] 밖 |
| ④ | 4문단. 칸트는 직접 증명 대신 가정을 앞세운다 | [A] 밖, 방향도 반대 |
| ⑤ | [A]는 전제 2가 ‘생각하는 나는 생각한다’와 다름없다고 할 뿐, 두 전제가 같다는 근거를 묻지 않는다 | 질문 자체가 [A]와 어긋남 |
정답 ①. ‘의식’을 같은 다리로 이은 채 읽으면 ⑤로 간다. 정거장 2를 안 지난 것이다.
16 — 동작: 학습지 한 줄의 화살표를 지문 화살표와 겹친다. 어긋난 한 줄이 답이다
| 번호 | 학습지 화살표 | 지문 | 판정 |
|---|---|---|---|
| ① | 칸트: 자아 인식 방식 ≠ 경험적 인식 방식 | 스트로슨도 이 구별에는 동의한다. 칸트 문장 자체는 맞다 | 적절 |
| ② | 스트로슨: 경험적 인식 → 자아 인식에 의존 | 지문은 반대다. 자아 인식이 경험적 인식들에서 추상화된다. 자기의식도 경험에 의존한다 | 부적절 |
| ③ | 스트로슨은 추상화 없이 ‘나’를 못 본다 / 롱게네스는 본다 | 정거장 1 그대로 | 적절 |
| ④ | 칸트·롱게네스: 도덕적 존재의 자율성 | 롱게네스가 칸트의 이 견해를 인정한다 | 적절 |
| ⑤ | 셋 모두: 시간의 흐름 속 동일한 인격으로서의 나 | 칸트는 가정으로, 스트로슨은 경험으로, 롱게네스는 신체로 받친다. 개념 자체는 셋이 쓴다 | 적절 |
정답 ②. 출제자가 한 일: 스트로슨의 화살표를 칸트 방향으로 뒤집어 적어 두었다. 철학자의 무기와 같다.
17 — 동작: 3층으로 깐다
| 층 | 이름 | 할 일 |
|---|---|---|
| 1층 | 보기 화살표 | 갑·을이 무엇을 무엇에 잇는지 그린다. 학자 이름은 아직 붙이지 않는다. |
| 2층 | 학자 화살표 | 선지가 붙인 이름의 지문 화살표만 꺼낸다. |
| 3층 | 씌우기 | 선지가 갑·을에게 씌운 말이 1층과 같은지, 2층과 겹치는지를 본다. 한 층이라도 어긋나면 죽는다. |
1층.
갑 생각하는 나의 지속 ──부족──► 인격 동일성
살아 있는 신체 ──필요──► 인격
프로그램(스캔된 의식) ──×──► 인격
을 사고 기능의 동일성 ──유일한 기준──► 인격 동일성
가정 ──필요 없음──► (버림)
신체 ──필요 없음──► (없어도 동일 인격)
3층 대조.
| 선지 | 2층 학자 | 선지가 씌운 말 | 1층 | 2층과 겹침 | 판정 |
|---|---|---|---|---|---|
| ① | 롱게네스 | 갑이 ‘프로그램만으로 인격’ | 갑은 그 반대. 프로그램은 인격이 아니다 | 롱게네스도 신체 기준 | 1층부터 죽음 |
| ② | 스트로슨 | 을이 ‘신체 없으면 인격 귀속 불가’ | 을은 신체 없어도 동일 인격이라 한다. 씌우기가 을을 뒤집음 | 스트로슨은 신체를 복합체에 넣는다 | 1층 죽음 |
| ③ | 칸트 이전 | 갑의 ‘생각하는 나 지속만으로는 보장 안 됨’은 그 견해에 의하면 옳지 않다 | 갑은 정말 그렇게 말한다 | 칸트 이전은 영혼(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곧 동일성이다. 갑과 충돌 | 살음 |
| ④ | 칸트 | 을: 가정 없이 사고 기능으로 판단 | 을은 정말 가정을 버린다 | 칸트는 가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 2층 죽음 |
| ⑤ | 롱게네스 | 을: 사고 기능이 기준, 인간 아닌 존재도 | 을은 사고 기능만 본다 | 롱게네스는 인간·살아 있는 신체 | 2층 죽음 |
정답 ③.
함정은 갑을 스트로슨에 바로 붙이는 것이다. 갑은 신체를 말한다. 스트로슨도 신체를 말한다. 그래서 손이 ②로 간다. 그러나 ②는 을의 입을 바꿔 놓았다. 3층을 안 깐 것이다.
칸트 이전 견해는 1문단 한 줄이다.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 지속한다. 갑은 그 지속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그 견해에 의하면 갑은 옳지 않다. 그게 ③이다.
6. 흔한 실수
- 칸트를 이해하려고 본문에 머문다. 시험장은 이해를 안 판다. 화살표가 살아 있는지를 판다.
- 스트로슨과 롱게네스를 둘 다 신체파로 묶는다. 정거장 1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 17번에서 갑을 스트로슨에 바로 붙인다. 1층과 2층을 한 칸에 넣으면 ②로 죽는다.
- ‘의식’이라는 같은 단어를 같은 다리로 잇는다. 정거장 2를 안 지난 것이다. 15가 ⑤로, 14가 ①·③으로 간다.
- 해설 강의를 다시 들으면 다음 지문에서 혼자 풀 수 있다고 믿는다. 강의는 명강이다. 시험장에는 그 강사가 없다.
7. 체크리스트
다음 모의고사 독서 지문에서, 답을 쓰기 전에 이것만 본다.
- [ ] 문단을 여섯 줄로 줄였는가.
- [ ] 화살표 방향을 그렸는가. 단어가 아니라 방향.
- [ ] 정거장 두 곳을 지났는가. 학자 사이 화살표가 반대인 곳, 같은 단어의 다리를 자르는 곳.
- [ ] 선지를 화살표로 바꿔 지문과 겹쳤는가.
- [ ] 적용 문항이면 3층으로 갰는가. 보기 / 학자 / 씌우기.
- [ ] 강사 없이, 이 동작을 혼자 했는가.
하나라도 강의 목소리로 메웠으면 그 문항은 아직 네 것이 아니다.
8. 닫기
다음 모의고사에서 강의를 다시 틀지 마라. 화살표를 그려라.
이해는 되는데 다음 지문에서 혼자 못 푸는 이유는 칸트를 몰라서가 아니다. 동작이 몸에 없어서다. 해설은 화살표를 대신 그려 준다. 시험장은 그 손을 빌려 주지 않는다.
시험장에서 너는 혼자다. 몸 뿐이다. 화살표 지도.
리드마스터 영어전문 국어논술 학원. 이후 리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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